건강한 비판, 비리 고발은 누군가를 끌어내리기 위함이 아니라 내가 사는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국회의원 땅테크 고발했더니, 차라리 땅테크 비법을 알려 달란다
<추적60분>의 「19대 국회, 땅 보고서」편을 보고 재시청하고자 공식 홈페이지에서 '다시 보기'를 클릭했다. 양해를 바란다는 팝업창이 떴다. 몇몇 다운로드 사이트에 들어가 봤지만 해당 방송분을 찾을 수 없었다. 다른 회차는 다운이 가능한 걸 보면, 프로그램 자체가 콘텐츠를 차단한 건 아닌 모양이었다.
보통 시사 프로그램에서 취재에 응한 일반인 인터뷰 촬영분이 방송되었을 때, 해당인의 요청으로 '다시 보기' 서비스를 중단하는 경우가 있다. 시청한 본방송을 떠올려 보면 일반인 인터뷰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 모자이크와 음성변조 처리가 됐고 다수의 국회의원 인터뷰를 담아서, 상대적으로 다른 때에 비해 일반인 인터뷰 자체가 적었다. 국회의원이 소유한 땅의 인근 주민과 공인중개사가 전부였다.
땅 중에서도 주로 농지를 다뤘기 때문에 인터뷰에 응한 일반인들은 주로 시골 사람들이었다. 일반화하기엔 무리가 있겠지만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개발 문제로 시끄러운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대개 개인 신상이 노출되는 것을 꺼린다. 처음부터 얼굴이 공개되지 않는 걸 바랐다면 모를까 사후에 문제를 제기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다. 실제로 이날 방송에서도 얼굴이 공개된 인터뷰이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 모자이크 및 익명 처리됐다.
일부 현직 국회의원들을 고발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그것도 열 명가량의 다수를, 얼굴과 이름까지 그대로 노출하면서 여러 차례 언급한 탓에 문제가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미쳤다. 포털로 갔다. 관련 글을 검색하다 '추적60분, 어처구니없는 방송'이란 제목을 발견했다. 누군가 방송 내용 중 왜곡이나 과장, 또는 허위 사실을 발견한 건 아닌지 의심하던 차라 궁금증을 풀어줄 거란 기대를 갖고 당장에 들어가 내용을 살펴봤다. 그런데 요지는 사실 관계를 따져 묻는 내용이 아닌, 취재진의 방송 의도 및 자세를 비판하는 것이었다.
해당 블로거는 영화이론을 전공해 미디어에 남다른 지식을 가지고 있고, 부동산 투자 관련 업종에 종사하고, 그리고 부동산 투자 정보 블로그를 운영 중이라고 한다. 그가 종사하는 분야에 대한 이야기여서일까. 나의 댓글 하나하나에 그는 상당히 격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개인의 생각은 다르기 마련. 건강한 비판은 개인 의식은 물론 사회에도 도움이 된다. 해서, 그의 생각을 먼저 붙여 넣고 이어서 방송의 취지를 십분 이해하는, 그와는 다른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토를 달아 본다.
본격적인 토 달기에 앞서 기본적인 견해를 미리 밝혀 둔다. 물론 철저히 주관적인 생각이다. '추적60분'의 방송 의도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는 청렴해야 할 국회의원이, 청문회에서 남의 부동산 투기를 캐물었던 바로 그 국회의원이, 마찬가지로 투기 및 불법과 편법을 저지르면서 토지를 매입한 사실이 있다면 이를 고발하겠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그러한 행각으로 애먼 주민들이 피해를 당하는 현장의 목소리를 국민들과 함께 듣겠다는 것이다.
추적60분의 보도를 반기는 이유
국회의원들이 건드리는 건 땅뿐만이 아니다, 주민들까지다
'추적60분'의 내용은 알맹이가 거의 없는, 쉽게 말해 '있는 사람들, 특히 선거로 뽑힌 사람들이 부동산 재산이 많은 게 배가 아프다'는 식이다. 말 그대로 '사촌이 땅을 사서 배가 아픈 것'이다.
국회의원 부동산 투자 문제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입장에서 밝힌다. '사촌이 땅을 사니 배가 아픈 것'이라는 표현은 완전 오해다. 이날 방송에는 여러 지역이 거론됐는데, 그중 한 지역의 주민으로 91년부터 얼마 전까지 만 20년을 살았다. 가족들은 지금도 거기 살고 있다. 24년째다.
개발 바람은 해당 주민에게 정말 피곤한 일이다. 찬성과 반대를 떠나 수시로 바뀌는 정책, 찬반 의견의 마찰, 공시지가와 실거래 금액과의 엄청난 격차, 오르락내리락하는 땅값 등으로 마음이 편칠 않다. 상황에 따라서 이사를 억지로 가야 할 수도, 반대로 거주지를 옮겨야 하는데도 불안정한 시장 탓에 매매가 이뤄지지 않아 옴짤달싹 못 할 수도 있다. 더 큰 스트레스는 언제 거주지 이전 명령이 떨어질지 모른다는 거다. 한마디로 내일을 계획하기 어렵다. 정부의 개발 정책과 옆 동네 땅을 가진 모 국회의원의 개발 계획에, 그야말로 주민은 수동적이 될 수밖에 없다. 모 의원은 자기가 원하는 땅을 모두 매입할 때까지 개발을 미룰 수도, 다른 개발에 밀리지 않기 위해 시기를 앞당길 수도 있다. 공공의 건물이나 도로의 위치 선정에도 개입한다.
내가 세운 계획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것만큼 불편한 일이 또 있을까.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농지 소유 의원의 행각에 애먼 주민들이 휘둘리기 때문에 고충을 호소하는 것이지, 남이 잘되는 걸 배 아파하는 게 결코 아니다.
제작진의 의도는 다양성에 입각해서 이해되어야 한다
문제는 방송 내용이 그런 것을 이야기하는 식이 아닌 '누구누구 의원이 땅이 많다'는 식이라는 거다.
제작진이 전하고픈 메시지를 해석하는 방식은 개인마다 당연히 다른 법이다. 각자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깨닫고 선택적으로 정보를 취한다. 중요한 건 그저 다른 의견일 뿐 틀린 생각이라 할 순 없다는 거다.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르지만, 누군가에겐 유용한 방송일 수도 있다. 사회 전반적으로 열린 사고 방식이 부족하다는 걸 다시 한번 절감한다.
시청자라면 누구나 본인의 배경지식으로 제작진의 의도를 미루어 짐작한다. 방송은 분명 '불법과 편법 사실'을 다뤘다. 의원들이 소유한 토지의 가격 상승률이 전국 토지에 비해 6.5배나 높았다는 점, 농사를 지을 거라는 계산된 거짓말로 주인을 꾀어 땅을 산 뒤 골프장을 짓는다며 말을 바꾼 점, 거짓으로 농업경영계획서를 작성한 점, 국회의원이 만든 법을 국회의원이 지키지 않고 있음에도 전혀 죄의식이 없다는 점들이 주요했다. '추적60분'의 제작진도 이런 내막을 밝히고자 했다고 본다.
부동산 투자를 하지 말라는 얘긴데, 직장에서 주는 200만 원의 월급으로 영원히 기계의 부속처럼 살라는 건가? 무슨 수로 부자가 될 것인가?
무슨 수로? 그들은 이미, 부자다. 그러니 하는 말이다. 영원히 기계의 부속처럼? 65세만 되면 영원히, 매달 꼬박꼬박 120만 원씩 챙겨 주기로 국가가 약속했다.
이런 보도의 이면에는 심각한 문제가 숨어 있다. 땅 한 평은 커녕 내 명의로 된 집도 없다며 서민의 생활고를 들먹이고, 교묘한 편집으로 감정에 호소해 봤자 좌절감만 생기고 분노만 커진다. ... 어제의 방송을 보라. 곁가지의 팩트만 가지고 사람들의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이런 걸 '선전 선동적 미디어'라고 한다. (필자가 영화이론 전공자라는 걸 오랜 독자는 알고 있을 것이다.)
없는 이들의 감성을 자극해 좌절과 분노를 불러일으키려는 게 아니다. 정당하게 부를 이룬 이들에게 앞으로도 계속 올곧게 살자는 응원의 메시지를, 권모술수로 부동산 자산을 증식한 공직자들에게는 각성하라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이다. 투자와 투기는 얼마의 기간 동안 얼마만큼의 시세 차익을 냈는지 일정 시간과 금액을 기준으로 나뉘는 게 아니다. 둘 다 이익을 얻기 위한 것이지만, 투기는 가격의 등락차의 취득만을 목적으로 한 거래라는 점에서 투자와 다르다. 따라서 '곁가지'만 가지고 자극한 게 아니라 문제의 '핵심'을 논한 거다.
* 투기 (投機)
① 기회를 틈타 큰 이익을 보려고 함 또는 그 일
② <경제> 시세 변동을 예상하여 차익을 얻기 위하여 하는 매매 거래
* 투자 (投刺)
① 이익을 얻기 위하여 어떤 일이나 사업에 자본을 대거나 시간이나 정성을 쏟음
② <경제> 이익을 얻기 위하여 주권, 채권 따위를 구입하는 데 자금을 돌리는 일
③ <경제> 기업의 공장 기계, 원료·제품의 재고 따위의 자본재가 해마다 증가하는 부분
그 시간에 차라리 부동산 투자법을 가르쳐 주는 게 낫겠다.
<추적60분>이라는 프로그램의 성격과 시청자들이 기대하는 내용은 '부동산 투자 노하우' 따위가 아니다.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추적해 대중에게 알리고,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보탬이 되고자 30년을 한결같이 달려 왔다. 이번 방송에 공감하지 못하거나 실망한 시청자들도 있겠지만, 투자 노하우를 가르쳐 줬다면 아마 더 많은 이들이 당황했을 거다. 그런 내용에 어울리는 프로는 따로 있다. <추적60분>은 제 본분에 충실했을 뿐이다.
투기냐 투자냐를 따지기에 앞서 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다. 다양성의 '인정'이다. '이해'와는 다르다. 이해할 순 없어도 인정할 순 있지만, 인정하지 않으면서 이해할 순 없다. 다양성에 무엇보다 중한 가치를 두기에, 그의 의견 역시 존중한다. 그런 시각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그 시간에 차라리 부동산 투자법을 가르쳐 주는 게 낫겠다'는 식의 발언은 전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말투다. 다른 시각, 다른 입장도 있다는 걸 인정하고, 귀 기울이고, 정확한 근거로 비판하는 성숙한 분위기가 인터넷에도 자리잡길 기대해 본다.
가치관에 대하여 MONZA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