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관에 대하여

영화로 번 돈, 대기업처럼 내 주머니 채우는 데 쓰진 않는다 - 강우석

몽자크 2013. 4. 30. 00:00

곽영진  영화 평론가  <쉬리> 대박이 터졌는데도 불구하고 IMF 위기가 닥치니까 막 돈을 빼 버리더라. 여기서 알 수 있는 건, 대기업 자본이나 최근의 통신자본은 크게, 길게 믿을 만한 영화 자본이 못 된다는 거다.

 

사상 최초로 한국영화 관객 수 1억 명을 돌파한 지난해. 많은 영화인들이 프레시 세례를 받았지만 진짜 주인공은 관객이다. 지난해 한국영화 점유율은 60%. 관객들은 한국영화를 더 많이 찾았다. 올해도 한국영화는 장밋빛 전망이다. 지난해보다도 더 큰 성장, 해외시장으로의 확장까지 희망 섞인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잊어서는 안 되는 게 있다. 영화의 힘인 다양성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지금의 성장도 영원할 순 없다는 거다.

 

한국영화 동반 성장 | 2013-01-29 | 시사기획 Link

 

힐링캠프에 출연한 강우석 감독의 인터뷰를 스크랩했다. 일부 대기업이 영화계를 독식하다시피 하고 있는 요즘, 강우석 감독의 마인드가 회자될 만하다고 생각해서다.

 

손을 안 댄 영화가 드물 만큼 수많은 영화가 그들을 통해 탄생한다는 점에서 대기업과 강우석 감독은 분명 유사하다. 그러나 강우석 감독은 영화의 제작부터 상영까지 전 과정을 장악해 영화인들을 위축시키는 게 아니라, 영화에 대한 사랑으로 독려하고 영화에서 번 자금으로 영화인들을 지원한다. 대기업은 영화에서 번 돈을 흥행이 보장된 영화, 안전한 영화에 투자해 더 큰 돈을 모으고 기업의 몸집을 불리는 데 쓰지만, 강우석 감독은 다양한 영화, 다양한 감독에게 기회를 준다. 제 주머니를 채우지 않고 영화 만드는 데 쏟아붓는 건 욕할 일이 아니라 박수칠 일이다.

 

한국영화의 발전에 진정 이바지하고 있는 주체는 대기업이 아니라 강우석 감독과 같은 영화인이다. 대기업 자본으로 도배한 블록버스터급 영화에 대한 불편함을 강우석의 마인드로나마 위로 받아 기쁘다.

 

지나치게 흥행 스코어를 신경 쓰는 게 아니냐, 너무 대중적인 영화만 추구하는 게 아니냐는 쓴소리는 '흥행 감독' 못지않게 그를 따라다니는 꼬리표다. 어릴 적부터 유달리 웃기고팠던 속내를 모르면 충분히 나올 법한 얘기다. 그는 마누라와의 전화 통화에서도 웃을 만한 얘기가 없으면 서둘러 끊는다고 한다. 반 친구들을 웃기던 학생에서 관객을 웃기는, 사회 풍자까지 더해 가며 웃기는 그의 이야기에 절로 귀가 기울여진다.

 

 

:        총 관객 동원 수 3,843만 명으로 대한민국 감독 중 1위다. 대한민국 대표 흥행 감독임을 인정하나?

:        과거에는 인정했는데, 요 몇 년 간은 전혀 감이 없다.

 

:        최동훈 감독이 4편의 영화 <도둑들>, <타짜>, <전우치>, <범죄의 재구성>으로 흥행기록 2위를 달성했다고 하는데?

:        그거에 대해선 내가 좀 억울한 게 있다. 관객 동원 얘기가 나왔으니까 하는 말인데, 1990년에서 2000년까지는 공식적으로 집계된 관객 수치가 없다. <투캅스> 관객이 약 80만 명이라고 하지만, 당시 분위기는 <실미도>를 훨씬 능가하는 수준이었다. 최동훈 감독은 아마 좀 더 해도 날 따라오기 힘들 거다.

:        그럴 수도 있겠다. 그땐 단관 개봉이어서 줄 서서 보곤 했다.

 

:        후배들이 치고 올라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        박찬욱, 김기덕, 홍상수 감독들의 영화를 보면 박수가 절로 나온다. 김기덕 감독이 상을 받알을 때도 아마 본인보다 내가 더 좋아했을 거다. 나는 <피에타> 같은 영화를 만들 수가 없다. 그런 재능도 없고, 그런 소재를 영화로 옮기겠다는 의지도 갖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의 영화를 보고 기가 죽진 않는다. 그들은 내 영화를 못 찍으니까. 색깔이 완전히 다르다. 내가 박찬욱 감독한테 <공공의 적> 찍으라고 하면 못 찍겠다고 할 거다. 흥행 기록이 신경 쓰인다면 모를까 영화 자체만으론 전혀 그런 게 없다.

 

:        유머에 대한 욕심이 남다른데?

:        '다른 사람들이 재미를 느끼는 데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어렸을 때부터 많이 했다. 일례로 수업 시간에 따분하다 싶으면 내가 맞더라도 선생님을 풍자해서 아이들을 웃기곤 했다. 지금도 내가 만든 영화를 보고 관객이 웃을 때가 정말 행복하다.

 

 

:        영화계에 입성한 계기는?

:        6살 때부터 어머니 손잡고 극장에 따라다니면서 영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어릴 시절 영화는 그냥 친구 같은 존재였다. 영화 전공으로 대학에 진학하긴 했는데, 중간에 빨리 영화를 찍고 싶은 마음에 학업을 중단하고 조감독으로 현장에 뛰어들었다. 만약 졸업장이 있었다면 조감독 생활을 못 견지디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내가 만들고 싶은 장르의 영화가 아니어서 나름 고충이 있었다. 조감독으로서 최선을 다하긴 했지만, 내가 만들고 싶은 영화는 코미디와 사회풍자 쪽인데 에로영화 조감독 생활을 계속 버텨야 하는 건지 고민스러웠다.

 

:        데뷔작은?

: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보다가 사회면의 '농촌 총각 결혼 비관 자살'이라는 머리기사를 보고 소재를 떠올려 시나리오를 썼다. 그런데 에로영화 조감독 출신인데다 제목도 <달콤한 신부들>이니까 대부분의 영화사가 멜로 장르를 기대했는지 소셜코미디인 걸 보고는 전부 거절하더라. 우여곡절 끝에 사회 현상을 코미디로 승화시켰다는 점에서 나름 호평을 받으며 데뷔전을 치뤘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도 마찬가지다. 한 여고생이 성적을 비관해 자살하면서 쓴 유서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들었다. 유서의 마지막 문구가 실제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였다. 결국 영화의 제목이 된 그 구절을 본 순간 영화로 옮겨야겠다 생각했고, 제목만 가지고 9일 만에 김성홍 감독과 함께 시나리오를 완성해 한 달 만에 촬영을 마치고 개봉했다. 흥행도 흥행이지만 영화 개봉 후 실제 자살율이 뚝 떨어졌다. 성적 때문에 자살하지 말자는 메시지 전달에 성공한 것이다.

:        이후 흥행 성적은?

:        이후 영화를 많이 찍고 싶은 욕심에 2년 반 만에 4편을 찍었는데, 넷 다 흥행에 실패했다.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 청년 실업을 다룬 <나는 날마다 일어선다>, 전교조를 소재로 한 <열아홉의 절망 끝에 부르는 하나의 사랑 노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스무 살까지만 살고 싶어요>가 그때 찍은 영화들이다.

전문가들의 평은 나쁘지 않아서 내 연출료, 개런티는 계속 올랐지만 흥행 성적이 저조하다 보니 영화사가 너무 어려워진다는 게 문제였다. 결국 미안한 마음도 들고 해서 내가 직접 돈을 빌려서라도 하나만 내 돈으로 찍어 보고 안되면 관두자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영화가 <미스터 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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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제작사를 차리게 된 건가?

:        영화를 만들 때 돈을 만지는 사람을 제작자라고 하는데, 감독이 제작을 겸하겠다는 건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영화를 만들겠다는 의미다. 돈도 직접 끌어오고, 영화도 내가 찍어서, 망해도 내가 망한다는 것이다영화사를 차린 뒤 첫 작품이 <투캅스>였다. 두 번째가 <마누라 죽이기>, 세 번째가 <투캅스2>였다. 한때 '자기 꺼니까 저렇게 열심히 하는구나'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        <투캅스> <공공의 적>을 시리즈로 제작했는데?

:        <투캅스>는 원래 시리즈 계획이 없었다. <투캅스> <마누라 죽이기>의 연이은 흥행 성공으로 주체할 수 없는 많은 돈을 벌었는데, 영화로 번 돈이니까 당연히 영화를 찍는 데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시 잘나간다는 감독 14명을 포함해 많은 스텝과 계약하면서 돈을 뿌리다시피 해 영화 두 편을 찍었다. 쫄딱 망했다. 갑자기 회사가 부도 위기에 처하더라. 돈이 없어서 영화를 못 찍겠다고 하니까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뿐더러, 갑자기 찍으려니 시나리오도 없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투캅스> 1편 마지막에 김보성이 세대교체 대상으로 등장한 게 떠올랐고, 계획에 없던 2편을 추진하게 됐다. 2편도 1편만큼 성공을 거두고 나니 3편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다. 장삿속으로 찍긴 찍어야겠어서 조감독을 시켜 찍었지만 예상대로 실패했다. 그리고 시리즈는 다신 안 하기로 마음 먹었다. <공공의 적>도 시리즈로 제작하지 않았나? '공공의 적'이란 제목상 우리 사회에 다양한 공공의 적이 있기 때문에 평생할 수 있겠더라.

 

:        제목만 보고도 투자를 결정할 만큼 적중률이 높다던데?

:        영화에 대한 첫인상으로 제목을 가장 중요시한다. 제목이 정말 좋으면 어떻게든 참여한다. 일례로, 영화계 선배이자 제작사 대표인 이춘연 선배와 한동안 사소한 문제로 관계가 껄끄러운 적이 있었는데, 그때 선배 제작사의 영화 라인업에서 <여고괴담>이라는 제목을 발견하고 아무리 사이가 안 좋아도 만나야겠다 싶어서 바로 다음날 아침 7시에 사무실로 찾아갔다. 8시 반에 문을 연다기에 수위실에서 기다리다가 결국 만나서 투자를 약속했고 그길로 회사에 가자마자 입금까지 마쳤다

 

건방? 그에게 영화는 자존심보다 중하다!

 

:        <실미도>가 충무로에서 몇 년 간 떠돌던 시나리오라는 말을 들었다.

:        20년 동안 돌아다녔다. 영화를 찍으려고 하자 선배 감독들 일곱인가가 본인이 찍을 참이었다고 하더라.

:        찍으면서 협박을 받았다?

:        북파공작원 출신들, 실제 비슷한 일로 고생하셨던 분들이 갑자기 사무실에 우루루 몰려와 왜 아픈 과거를 들추냐며, 국가에 바친 헌신이 헛되이 되게 놔둘 순 없다며, 영화 촬영을 만류했다. 협박이라기보다는 애절한 부탁에 가까웠다. 그래서 어르신들께 찍어서 도움이 되겠다고 확언했다. 막상 개봉하고 나서는 같이 울고 공감하고 고마움도 전하면서 협박 같은 거 받으면 곧장 말하라고까지, 보호해주겠다고까지 하더라. 그분들이 좋아하시니까 반공단체에서 빨갱이로 고발해 잠시 곤욕을 치루긴 했다. 반사회적인 영화라고 해서 정치권에서도 말이 많고 했지만, 그 얘기를 꺼낸 것만으로도 나는 만족하고 있다. 아픈 과거지만 그걸 끄집어내 얘기할 수 있는 시대를 연, 영화의 힘을 발휘한 작품이 아닌가 싶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        지금까지 투자한 영화가 190여 편? 실패한 영화도 있었나?

:        100편 이후 집계해 보진 않아 정확히는 모른다편 수로 따지면 당연히 실패작이 훨씬 많다. 보통은 흥행작만 기억하기 때문에 그 흥행 성과로 어마어마한 돈을 벌었을 거라 생각하지만, 실제 안을 들여다보면 정말 곪아터져 있다. 망한 영화는 얼마를 손해봤는지 절대 기사화되지 않는다. 하지만 성공작은 손익분기점만 넘어도 대박난 것처럼 엄청나게 부풀려 보도된다.

이경규 감독은 알 거다. <복면달호>로 돈 벌었나? 전혀 못 벌었다. 맞다. 그런 실정이다. 구체적으로 짚어보면, <실미도>가 대박나던 해에 제작사는 적자였고, <왕의 남자> 성공 이후 1년 만에 회사는 초토화됐다. 영화 저널에서 기획·제작 중인 영화 목록을 쭉 보는데 무슨 이런 영화를 찍나 싶은 것들이 있어 알아보면 다 우리 회사가 투자한 작품인 거다. 직원들 하는 말이, 회사에 공헌했거나 고생한 감독들에게 전부 다, 한 번 실패했어도 한 번씩 더 기회를 주었다고 한다. 돈을 벌어주고 나간 감독은 없다. 10억 벌어 주고 나선 20억 까먹고 나간다.

 

:        그래도 어느 정도 벌었는지가 궁금하다.

:        투자한 영화로 얻은 수익은 내 돈이 아니다. 회사 돈이다. 나는 내가 연출한 영화에 대한 연출료와 그 흥행에 따른 보너스만 받는다. 여튼 회사 돈이든 내 돈이든 생전 처음 보는 큰 액수의 돈이 들어오면, 가만히 보고 있지를 못하겠다. 빨리 그 돈으로 또 영화를 찍고 싶다. 그래서 영화가 흥행 대박이 나면, 나보다 다음 작품 준비 중인 직원들이 더 좋아한다. 바로 영화 제작에 들어갈 수 있으니까. 실제로 바로 시작한다.

오랜 시간 큰 돈이 회사에 머무른 적이 없다. 그렇게 많은 흥행작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울고 웃는 건 잠시뿐이다. 바로바로 작품에 들어가다 보니 이 작품에 웃었다, 저 작품에 울었다를 계속 반복한다. 3년 전 하루는 국세청에서 정기 세무조사를 받았는데, 플러스보다 마이너스가 많으니까 한 사람이 나를 위로하더라. 제발 돈 좀 벌라면서, 회사가 이게 뭐냐면서.

 

:        영화에서 번 돈을 영화에 다 쓴 건가?

:        그렇다. 보통 관객 400만 들었다고 하면 돈 엄청 벌겠거니 생각하지만, 광고비를 포함해 제작비 100억 든 영화에 400만 관객이면 겨우 인건비만 받아 가는 수준이다.

 

:        한때 영화사가 위기를 겪으면서 대기업 인수설도 있었는데?

:        시네마서비스라는 회사를 만들었는데,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대기업 합병 얘기가 나왔다. 회사가 없어지는 순간 나는 엄청난 거부가 될 수도 있었다. 회사는 대기업에 팔고 나는 프리랜서가 되는 개념이다. 주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부추겼는데, 후배들에게도 부끄러운 일일 뿐만 아니라 내가 회사를 팔아먹으면서까지 돈을 벌어야 되나 싶어 접었다. 돈을 포기하고 회사를 택해 그 뒤로도 계속 영화만 만들었다

 

:        후회 없나?

:        후회 있다. 너무 어려워서 후회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위기를 겪은 데다가 그 이후 100편 이상의 많은 영화를 만든 덕분에, 동료 제작자나 후배 감독들이 저 사람처럼 해보자, 저 사람 한번 이겨보자, 이런 경쟁을 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결국 그들의 마음가짐과 열정이 한국영화의 발전에 도움이 됐다는 생각을 하면 참 뿌듯하다. 진심으로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다.

 

:        제작도 하고 연출도 하다 보니 영화계에서 너무 나선다, 공공의 적이다, 라는 말도 있는데?

:        재미없는 영화가 무슨 영화냐, 재미없는 영화는 망해도 된다, 영화가 재미없으면 책임을 져라, 등 다소 과격한 표현을 쓰는 바람에 일부 감독, 특히 예술 감독의 분노를 샀던 것 같다. 본심은, 예술 영화도 자본이 있어야 찍을 수 있기 때문에 상업영화가 잘돼야 예술영화도 잘되고 영화계 전반이 잘된다는 의미였다.

또 하나, 제작이든 연출이든 시나리오든 대부분 오랜 기간 준비해서 몇 년에 걸쳐 한 작품이 나오는데, 나는 거의 1년에 연출 1, 제작 10여 편에 참여하다 보니 영화 자막에 계속해서 내 이름이 등장하는 거다. 그런 부분 때문에 장악한 듯 보일 수는 있다.

내 입장을 밝히자면, 우선 스스로 만들어 가고 있는 건데 기회를 독차지하는 것처럼 비춰지는 게 안타깝다. 게다가 엄청난 돈을 번 사람으로 인식되면서 오해가 깊어진 것도 사실이다. 이에 대해서는 딱히 뭐라 할 말이 없다.

그저 영화로 번 돈을 영화로 써야 한다는 생각에서 수많은 영화를 제작했을 뿐이다. 영화로 번 돈을 다 내 주머니에 털어넣고, 가끔 돈 될 만한 영화만 찍고? 이렇게 하는 게 영화인들에게 덜 거슬릴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런 오해나 편견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공공의 적이라고 하든 말든 난 내 길을 가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 생각엔 지금도 변함없다.

 

 

:        5년 전부터 닥친 슬럼프는 주변의 쓴소리 때문이었나?

:        스스로 만족하고 스스로 즐거워야 하는데, 비평가나 기자들 눈치 보며 영화를 만들다 보니 힘든 시기를 맞았던 것 같다. 예전엔 오로지 관객만 쳐다봤다. 관객과 승부를 본다는 생각으로 찍을 때는 참 즐거웠는데 그때는 신명이 나지 않더라. 그래서 약간 변신한답시고 <이끼>를 찍었다. 내가 잘 찍는 장르가 아니다 보니 찍는 동안 무척 괴로웠다. 말이 되는 영화를 찍고 있는 건지도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완성 후 나쁘지 않다는 평을 듣고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 그래도 말은 되는 구나' 생각했다. 이렇게 스스로 위안을 삼을 정도니 말 다 한 거 아니겠나.

 

:        <이끼>로 감독상을 받았는데?

:        너무 쑥스러웠다. <실미도>로 받을 때는 고생하니까 주는구나 싶었고 고생한 걸 떠올리며 감사히 받을 만하다고 느꼈는데, <이끼>로 받으니까 헷갈리더라. '너는 스릴러물도 잘 찍는다'라고 스스로에게 주문도 걸어 보고, 휴먼 쪽으로도 가보자 해서 글러브를 찍었다. 그땐 더 고통스러웠다. 그렇게 계속 누적되면서 완전히 지쳐 종국에는 옛날 내 영화에 대한 갈증이 깊어지더라. 내 본연의 색깔을 되찾고자 다시 돌아와 만든 영화가 이번 영화다. 오랜만에 내가 잘할 수 있는 영화로 돌아왔다.

 

:        강우석 감독에게 '은퇴'?

:        상업영화를 찍는 사람에게 은퇴란 자기가 해야겠다고 마음 먹고 하는 게 아니라 관객이 시키는 거라고 본다. 작품성도 부족하고 흥행실적도 형편없다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동으로 은퇴다.

 

강우석편 | 2013-04-08 |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 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