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강 후기>   사람에 대한 거짓말, 정혜신

 

'사람에 대한 거짓말'이라는 주제로, 경계하고 주의해야 할 것을 짚어 봄으로써, 참에 근접하는 방도를 찾아보고자 한다.

 

1.  '다 안다'는 말은 거짓말

 

  파블로브의 개

수십 년 전 정신 의학 초창기 시절 성행했던 이론으로, 간단한 조작만으로 사람 및 동물의 생리적인 반응을 예측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후 행동 조작에 관한 많은 실험 결과, 사람은 단순하게 예측, 통제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게 밝혀지면서 현재 그 신뢰도가 많이 떨어졌다.

 

  헐리우드 영화

헐리우드의 유명한 영화 제작사들은 영화를 보는 관객의 심리에 일종의 공식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나름의 그 공식을 가지고 관객의 심리를 짐작해 영화를 만들어 지금까지 상당 부분 영화계에서의 성공을 이뤘다. 그런데 최근 들어 헐리우드 영화를 가리켜 너무 뻔하다고 하는 관객들이 늘고 있다. 모든 사람의 심리가 예상대로 반응하지만은 않는다는 얘기다. 나름의 규칙을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거다. '과학이나 이론으로 알 수 있는 부분이 분명 있지만, 그게 전부일 순 없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거짓말탐지기

거짓말탐지기는 과학적으로 설계된 기계다. 인간이 조절할 수 없는 생리적 반응을 감지해 말의 참과 거짓을 알아채는 원리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 최근에는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지 않고 있다.

 

  베테랑

20년 된 베테랑 형사를 떠올려 보자. 경험칙에 근거해 뛰어난 적중률, 검거율을 자랑하는 베테랑 형사는 일반적으로나 본인 스스로나 거짓말을 잘 잡아낼 수 있다고 믿는다. 실제로 확률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경험칙에 대한 지나친 믿음이 오히려 ''으로의 접근을 멀어지게 할 수도 있다는 걸 결코 잊어선는 안 된다.

 

2.  '이런 사람'이라는 말은 거짓말

 

  심리 유형

프로이드의 제자 융의 이론을 바탕으로 발전된 여러 가지 심리 유형 이론이 있다. 심리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자신의 유형을 스스로 분석해 보거나 실제로 검사를 받아 본 이들도 있을 것이다. 분명 심리 유형 이론은 타당한 근거를 바탕으로 다년간의 연구를 통해 이뤄낸 훌륭한 성과다. 그러나 이 이론들 역시 마찬가지로 지나친 맹신은 오류를 낳을 수 있다. 한 개인을 단순하고 명확하게 유형별로 나누다 보면 사람에 대한 인식이 명료해진다는 이점이 있는 반면, 그 외의 것은 무시하거나 부정해 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이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다분하고, 참과 거짓의 판단을 흐리는 요인이 된다.

 

  다중인격

모든 사람은 다중인격자임을 항상 기억하고 있으면, 거짓을 가리는 데 도움이 된다. 사람은 여러 가지 페르소나, 여러 가지 인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한 사람이라도 관계에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 매번 다른 모습을 보인다. 결국 모두가 다중인격자이며, 그것이 정상적인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병적인 다중인격도 물론 있다. 이들은 평균적으로 13가지의 성격을 구사한다고 학계 내에 알려져 있는데, 정상적인 다중인격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안경 도수나 필체까지 달라지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그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정상적인 범위 내의 다중인격으로 볼 수 있다.

 

  페르소나

'굉장히 긴장하고 갔는데 실제 만나 보니 참 털털하고 인간적이더라.' 인터뷰 기사에 흔히 등장하는 첫마디다. 이는 하나의 페르소나로 사람을 규정함으로써 범하게 되는 오류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대목이다. 누구에게나 털털하고 인간적인 면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흔히 사람들은 하나의 페르소나에 압도 당해서 상대방의 '실체'를 보지 못한다. 사람에 대해 내리는 단순 규정이 거짓의 시초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3.  '완벽한 사람'이라는 말은 거짓말

 

  반사회적 인격장애

거짓말은 본질적으로 나르시시즘에서 비롯된다. 전문가들은 반사회적 인격장애와 감별 진단해야 하는 첫 번째로 나르시시즘을 꼽는다. 범죄자들에게서 발견되는 반사회적인 인격장애와 가장 유사한 것이 나르시시즘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진 이들은 나르시시즘적 요소를 아주 많이 가지고 있다. 이들은 아름다움, 성공, 권력 등을 끊임없이 추구하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어떤 것도 감수한다. 타인은 물론 자신에 대한 공감 능력조차 없어서, 자기의 목적 달성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고 희생시키면서도 그에 대한 죄책감은 전혀 갖지 않는다.

 

  정신적 특권층

나르시시즘에 빠진 이들을 가리켜 '정신적인 특권층'이라고도 하는데, 그만큼 자신에게 지나치게 몰입하는 탓에 항상 주위 사람을 희생시키기 때문이다. 또한 자기한테는 흠이 없다고 믿고 있어서 자신을 돌아보지도, 성찰의 고통을 느끼지도 않는다. 본인이 추구하는 것을 이루고자 거짓말도 일삼지만, 죄책감은 없다. 타인으로부터 칭송 받을 만한 완벽한 이미지를 지켜내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외양적으로 매우 깔끔하다는 것이 이들의 특징 중 하나다. 옷도 잘 입고, 출근 시간도 잘 지키는 등 겉으로는 전혀 흠이 없어 보인다.  

 

  투사와 내사  

투사 投射 Projection

자신의 성격, 감정, 행동 따위를 스스로 납득할 수 없거나 만족할 수 없는 욕구를 가지고 있을 경우에

그것을 다른 것의 탓으로 돌림으로써 자신은 그렇지 아니하다고 생각하는 일. 또는 그런 방어 기제. 자신을 정당화하는 무의식적인 마음의 작용을 이른다

 

나르시시즘의 지배적인 특징은 투사, 즉 책임 전가다. 나르시시즘이 강한 사람과 대화를 하다 보면, 내가 한 말이 상대방에게 스며들지 않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반사되어 고스란히 나에게 되돌아오는 것이다. 정상인이라면 누구나 나르시시즘의 희생양이 될 수 있는데, 특히 무슨 일이든 자기 탓으로 여기고 지나친 책임감과 죄의식을 갖는 내사Introjection 경향이 짙은 이들이 그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높다. 본능적으로 더 약한 사람을 희생양으로 삼으려 하기 때문이다. 나르시시즘이 강한 부모가 흔히 자식을 희생시키는 것이 이러한 측면에 해당된다. 투사는 주위를 병들게 할 뿐 자기가 병드는 법이 없어서, 절대 우울증에 걸리지 않는다. 반대로 내사는 우울증을 일으킬 위험이 크다. 투사는 물론 내사 역시 적정 수준을 유지하고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4.  '모호하다'는 말은 참말

 

  모호함

미국 내 한 연구 결과가 발표되면서 공화당이 발칵 뒤집힌 적이 있다. 내용인 즉슨, 히틀러, 무솔린, 레이건, 그리고 부시 대통령과 같은 보수주의자들은 모호함을 직면했을 때 이를 견디지 못하고 일정한 증세를 보이는데, 이는 보수주의가 심리학적 노이로제와 같은 질병의 일종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평등에 대한 독선적인 혐오감, 공격성, 막연한 두려움, 권위주의적인 보수주의의 성향이 보수주의자들을 친숙한 것에 매달리게 하고 단순한 고정관념을 강화시킨다는 해석이다.

인간관도 마찬가지다. 사람에 대한 보수주의가 생기면, 원하는 대로 보고 편한 대로 간단히 규정하기 쉽다.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모호하지만, 모호한 존재가 사람이라면 그 모호함을 견딜 필요가 있다.

 

  완벽한 불완전함

사람이란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몇 가닥의 과학적인 지표는 있을 수 있지만, 모호한 수많은 측면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참과 거짓을 가려내는 혜안을 가지려면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생각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100% 확신하는 한 가지를 덧붙이려 한다. 사람에 대한 그 어떤 단언도 항상 참일 수는 없지만 단 하나의 의심할 여지없는 명제가 있다. 바로, '모든 인간은 완벽하게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이다.

2006 | 한겨레21 인터뷰특강 | 거짓말 Link

 

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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