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45

어떤 의견 표명을 억누르는 데에서 발생하는 특유한 해악은, 현세대뿐만 아니라 후대의 사람들로부터, 또 그 의견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반대하는 사람들로부터 인간적인 특성을 강탈해간다는 점에 있다. 만약 그 의견이 옳은 것이라면, 잘못을 버리고 진실을 취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게 되는 것이며, 그 의견이 틀린 것이라면, 진실과의 충돌을 통해 얻게 되는 한층 더 명료하고 생생한 인식이라는 중요한 혜택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p. 46

불행하게도 인간의 분별력은 이론상으로는 자신의 판단이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실질적인 문제에 부딪치면 그 가능성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는다. 자신이 잘못 판단할 가능성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그것을 방지하기 위한 대비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주 확실하다고 믿는 의견이 사실은 쉽게 범할 수 있는 오류의 한 가지 예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쉽사리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p. 49

어떤 의견이 여러 차례 논쟁을 거친 후 더 이상 반박이 없으므로 진리라고 가정되는 것과, 반박을 허용하지 않기 위해 그것을 진리라고 가정하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어떤 의견에 대해서든 철저하게 부정하고 논박할 수 있는 완전한 자유를 갖게 된다면, 우리의 의견이나 그에 따른 행동은 진리에 가까워질 수 있다.

 

p. 75

자기 스스로 생각하는 과정을 거치지도 않고 얻어낸 유일한 의견을 진리라고 주장하는 사람보다, 오히려 충분한 연구와 준비 끝에 자신만의 주장으로 오류를 만들어낸 사람이 오히려 진리탐구에 도움이 된다.

 

p. 102

어떤 문제에 대해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명백하게 완전 합의를 한다고 해도 예외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비록 세상 사람들의 의견이 진리라 할지라도 그들의 주장에는 귀 기울일 만한 가치 있는 내용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언제나 가능한 일이다.

 

p. 104

육체적 욕망에 대한 공포를 만들어 낸 도덕률은 금욕주의를 숭배하게 했다. 그것은 점차적으로 율법주의와 타협하게 만들어 천국에 대한 희망과 지옥으로의 위협을 겨냥함으로써 도덕적 삶으로 이끄는 적절하고 휼륭한 동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가장 뛰어난 고대인보다 더 낮은 곳으로 추락하는 것이다. 인간의 도덕성에 본질적으로 이기적 성향을 부여해 버린 결과가 된 것이었다. , 각각의 개인이 신의 창조물로서 받은 은혜에 대한 의무감을 무시해 버린 것이다.

 

p. 113

토론하는 사람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나쁜 해악은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을 사악하고 비도덕적인 인물로 낙인찍어 버리는 것이다. 대중적이지 않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특별히 이러한 비방에 비교적 잘 노출된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소수이며 영향력이 없기 때문이며, 또한 그들이 정당하게 대우 받는지를 관심 있게 바라볼 사람들이 그들 자신들 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p. 127

자기 스스로 생활을 설계하고 선택하는 사람은 자신의 모든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무엇인가를 알아보는 관찰력, 앞날을 예측하려는 추리력과 판단력, 결정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는 활동력, 결정을 내리기 위한 식별력을 구사해야 한다. 또한 일단 결단을 내렸을 때, 자신의 신중한 결정을 지키려는 확고한 의지와 자제력도 발휘해야 한다.

 

p. 132

타인에 관한 일뿐만 아니라 자신에 관한 일에서도 개인이나 가족조차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지 않는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나의 성격과 기질에 맞는 것은 무엇인가? 내 안에 있는 최선, 최고의 것을 충분히 발휘하여 성장시키고 더 펼쳐 보이도록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러한 물음 대신 내 분수에 맞는 일은 무엇인가? 나와 비슷한 신분 또는 경제적 여건에 놓여 있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어떤 일을 할까? 혹은 (더욱 나쁜 것은) 나보다 더 나은 신분과 경제 여건을 가진 사람들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p. 140

사람들은 감동적인 시를 쓰거나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해준다면 천재성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천재성의 진정한 의미, 즉 사상과 행동의 독창성에 대해서는 비록 그리 놀랄 만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심으로 그런 것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태도는 너무 자연스러워 그리 이상해 보이지도 않는다.

 

p. 163

나는 절대로 자기중심적 미덕을 경시하지 않는다. 비록 사회적 미덕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자기중심적 미덕은 중요하다. 이 두 가지를 다 계발해야 하는 것이 교육의 임무다. 그러나 교육에서도 강압적인 방법만큼이나 확신과 설득을 동원해야 효과를 얻어낼 수 있으며, 교육 기간이 끝난 다음에는 오로지 확신과 설득에 의해서만 자기중심적 미덕을 키워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p. 194

붐베이의 조로아스터의 사례가 특이하면서도 적절하다. 근면하고 진취적인 이 종족은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 교도의 후손이다. 이들이 칼리프의 지배를 피해 고국을 떠나 서부 인도에 도착했다. 이들은 쇠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종교적 자유를 얻었다. 그러나 이슬람에 의해 정복되었을 때, 역시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신앙의 자유를 얻어냈다. 처음에는 권력자에 대한 복종으로 시작된 관습이 어느덧 제2의 천성이 되었다. 오늘날까지도 이들은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이것은 그들의 종교에 의해 강압된 것이 아닌데도 결국 관습이 되어 버렸다. 이처럼 동양에서는 관습이 곧 종교적 성격을 가진다.

 

 

자유론 표현의 자유가 진보로 이어진다는 믿음   NAVER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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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엇박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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