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재능 - 악인의 재능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선한 사람, 모르는 사람, 그리고 아픈 사람. 선한 사람은 무엇이 바람직하고 정당한 것인지를 정확히 알고, 알고 있는 바를 실행에 옮길 수 있을 만큼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다. 모르는 사람은 이기적이고 부정적인 행위를 구분해 낼 만한 확고한 기준을 정립하지 못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알고 나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비교적 희망적이다. 마지막으로 아픈 사람은 머리로는 충분히 선악을 구분할 수 있지만, 정신적 오류나 심리적 왜곡으로 나쁜 짓을 반복하는 사람이다. 세 종류의 사람은 크게 선한 사람과 모르거나 아파서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 이렇게 둘로 묶을 수 있다. 또는 선하거나 몰라서 잘못을 저지르는 평범한 사람과 비정상적인 악인으로도 나눌 수 있다. 요는 인간의 악행이란 무지 또는 왜곡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관점이다.

 

성선설이나 성악설처럼 거창한 이론을 내세우려는 게 아니다. 사람이 자기의 강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약점에만 얽매여 살면 어떤 폐단이 나타나는지를 일깨워 주고 싶을 뿐이다. 구체적으로 두 가지를 목적으로 한다. 하나는 본인의 강점을 왜 발견해야 하는지, 다른 하나는 왜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이를 전파해야 하는지 그 필요성을 알리고자 한다. 주변에서 그 사람의 약점에만 주목하고 본인마저 강점을 방치한 채 약점 개선에만 열을 올리는 것은, 자신 또는 타인을 비정상적인 악인으로 망쳐 놓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는 결국 다음 다섯 가지 가운데 일부 증상을 보일 것이다.

 

첫째, 소극적이고 수동적이다. 일종의 허무주의로, 허무감에 휩싸여 어떤 일에도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는 것이다. 이들은 애초에 가능성을 차단해 버리기 때문에 의지 자체가 없다. 의욕이란 그저 무의미하고 헛된 것일 뿐이다. 중요한 건 그 부정적인 기운이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옮을 수 있다는 점이다. 희망에 차서 의지를 불태우는 사람을 보면 비웃거나 무시하면서, 그렇게 애쓸 필요가 없다는 둥 그래 봤자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는 둥 초를 칠 가능성이 높다. 세상을 달관한 듯, 왜곡된 세계관을 주변 사람에게 주입시키며 훈계하고 나서는 것이다. 듣는 이는 당연히 맥 빠지고 불쾌하다. 조직 내 분위기를 망치는 반동분자인 셈이다.

 

둘째, 과시가 지나치다. 배경이나 학벌, 이력, 경제력, 영향력, 행사할 수 있는 권리 등을 재차 강조하거나 시각적으로 곳곳에 전시해 두기 바쁘다. 가능한 한 실제보다 부풀려서 더 거창해 보이도록 꾸민다. 이를 옆에서 보고 들어야 하는 주변 사람들은 심기가 불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당사자 입장에선 남들에게 내세울 수 있는 그 한 가지를 놓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애써 과시하지 않아도 스스로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본인이 중요시하는 가치를 포기하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우러러볼 만한 다른 무언가로 그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지 않으면 버티기 어렵기 때문이다. 수시로 확인하고 확인 받지 않으면 언제 무너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것 외에는 내세울 게 없기 때문이고, 그것으로 간신히 약점들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욕심이 끝이 없다. 일 자체에서 보람과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탓에 결코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다. 그 욕구는 주로 가시적인 결과, 즉 일반적인 가치 판단 수단인 돈에 대한 소유욕으로 나타난다. 강점을 발휘하면서 희열을 맛보지 못했기 때문에, 끝없이 결과에 집착하고 아무리 재산이 불어나도 만족하지 못한다. 물론 차곡차곡 돈을 모으고 불리는 데 재능과 관심이 있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차이점이 있다. 그들은 한꺼번에 왕창 재산이 늘어나길 바라지 않는다. 엄청난 부라는 결과가 아닌, 부를 조금씩 쌓아가는 과정을 즐기기 때문이다. 반대로 어떤 식으로든 결과만 좋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과정을 문제 삼지 않는다. 독식과 비리가 난무하는 이유다. 있는 사람들이 더한, 강자의 횡포가 끊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진정한 삶의 가치를 깨닫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강점의 효과를 터득하지 못하는 한, 그들은 결코 삽질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넷째, 쾌락을 좇는다. 자극적이고 말초적이며 동물적인 쾌락을 추구한다. 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강점을 발휘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생산적인 쾌감을 만끽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동물적인 쾌락을 통해서라도 만회하고자 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로부터 얻는 쾌감에 쉽게 내성이 생겨 버린다는 데 있다. 끊임없이 더 높은 강도, 더 자극적인 수준을 원하게 된다. 이는 누군가에 대한 소유욕이나 지배욕, 변태적이고 비상식적인 이상성욕, 마약중독이나 알코올중독, 가학 및 자학 행위 등으로 각종 사회악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발전한다. 이 경우, 개인적인 공간에서 은밀하게 시작되어 범죄로 세상에 알려지기까지 대책 마련은 커녕 주변 사람들조차 문제의 심각성을 눈치채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 어떤 경우보다도 더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자기 자신을 비하한다. 그들은 자기가 사랑 받고 존중 받을 만한 존재라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스스로를 존재할 가치가 없는, 그야말로 무능한 골칫거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건강한 자아비판의 긍정적인 측면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그들에겐 자기가 한 일, 자기의 의견에 대해 스스로 옳고 그름을 따져 물을 수 있는 객관성이 전혀 없다. 뭘 해도 안될 거란 생각, 뭘 해도 주변에 해만 끼칠 거란 극단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개선의 여지나 희망을 찾아보려는 시도 따윈 없다. 더 큰 문제는 자기 비하가 시간이 지나면서 운명이나 배경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지고, 그 억울하다는 생각이 자기 자신에서 다른 사람, 세상을 향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미 자포자기에 빠진 상태이기 때문에 되는 대로, 난폭하게 반응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다. 

 

모두 당사자의 행복을 가로막는 것은 물론, 비인간적이고 몰지각한 행동으로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주는 극심한 부작용들이다.

 

사람을 세 종류로 나누어 생각하는 관점은 행복한 삶에도 분명 도움이 된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피해를 봤을 때, 그가 처음부터 악한 동기를 가지고 계획적으로 나에게 해코지했다고 생각하면 나만 두 배로 힘들어진다. 그에 대한 미움이나 배신감 때문에 분노가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의도는 좋았지만 결과적으로 피해를 입게 됐다거나 마음이 병들어 자기도 모르게 못된 마음을 먹었다고 생각하면, 내 마음은 훨씬 편해질 수 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을 자동적으로 실천하게 된다. 물론 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다. 과거의 정신적 충격으로 얻게 된 트라우마, 가정환경의 특수성으로 불안정해진 심리 상태 등을 감안하면, 밉게만 보이던 상대에 대한 측은지심이 이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그 역시 피해자란 생각에 중오심을 품는 고통만큼은 피할 수 있게 된다. 미워하는 마음보다 안타깝고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이 편하고 유익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약점 개선을 강요하면 마음이 병들고, 강점 발휘를 요구하면 병든 마음이 치유된다. 악인의 재능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주위를 둘러보면, 마음의 상처가 쌓여 주변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사실 건강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을 찾는 게 오히려 어려울 정도다. 내 주위에서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정상으로 되돌리고 싶다면, 그의 강점을 발견하고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줄 필요가 있다. 히스테리로 나타나는 현상을 탓해 봤자 상황은 결코 나아지지 않는다. 원인을 뿌리 뽑는 것만이 그의 히스테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다.

 

 

 

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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