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생각 - 개똥철학 - 뽀뽀와 키스

 

평소 오락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 편은 아니지만 챙겨 보는 프로가 두 개 있다. '자기야' '붕어빵'. 부부 관계와 가정 생활에 관심이 많아서다. '자기야'를 비롯한 심야 오락프로그램에선 종종 가장 최근에 배우자와 키스한 게 언제인지를 묻곤 한다. 신혼부부의 잦은 애정 표현과 중년 부부의 뜨뜻미지근한 스킨십을 비교해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부부간의 애정이 얼마나 뜨거운지를 가늠하는 기준으로 키스를 떠올린다. 방송 아닌 사석에서는 키스 또는 성관계가 그 기준이 된다.

 

스킨십에는 단계가 있다. 연인 사이에서는 보통 뽀뽀 다음 키스, 그 다음을 성관계로 친다. 가장 가벼운 것이 뽀뽀, 가장 긴밀한 것이 성관계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만을 기준으로 삼은 데서 나온 발상이다. 스킨십을 단순한 신체 접촉이 아닌 진심 어린 애정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면 순서는 뒤집힌다. 행위보다 마음을 더 중요하게 본다면 뽀뽀가 최상위, 성관계가 최하위 개념이다. 성관계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도 가질 수 있지만, 마음이 가지 않는 사람에게 뽀뽀를 하진 않는다. 성관계나 키스를 뽀뽀에 비해 '깊지만 가벼운' 스킨십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뽀뽀야말로 연인 또는 부부의 관계를 진단해 볼 수 있는 기준이 된다. 서로간의 합의만 이루어진다면 성관계나 키스는 얼마든지 벌일 수 있는 스킨십이다. 성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정당한 대상이니까. 반면에 입을 맞추는 행위는 성적 욕구와 무관하다. 상대가 사랑스러워 보일 때, 그에 대한 애정을 주체할 수 없을 때, 절로 하게 되는 게 뽀뽀다. 눈 앞의 누군가가 예뻐 죽겠을 때 나도 모르게 가져가게 되는 게 입술이다. 뽀뽀는 스킨십이긴 하지만 키스나 성관계처럼 흔히 부정적으로 말할 때 쓰는 '애정 행각'과는 거리가 멀다.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뽀뽀를 요구하거나 삼촌이 조카에게 뽀뽀하는 건 애정 행각이 아니다. 뽀뽀란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선 단순히 인사로 볼에 입을 맞추진 않는다. 공공장소에서의 연인 간 스킨십은 자칫 풍기문란죄가 될 수 있을 만큼 보수적인 나라이기도 하다. 부부간의 사랑은 바람직한 감정이지만 부모 앞에서 키스 따윌 하는 사람은 없다. 나도 마찬가지다. 보편적인 문화를 이해하고 있어서다. 하지만 뽀뽀는 다르다. 뽀뽀란 굳이 남의 눈을 피해야 할 만큼 낯 뜨거운 행위가 아니다. 예의를 갖춰야 하는 자리나 어른들과 함께 있는 자리가 아니라면, 스타벅스에서 거리낌 없이 조카의 볼에 입을 맞추듯 얼마든지 연인 간의 뽀뽀도 괜찮다는 생각이다. 이젠 시부모 앞에서도 나도 모르는 사이 남편에게 뽀뽀를 퍼붓고 있다. 진심은 전해지기 마련. 처음 한두 번은 당황하는 기색도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놀리면서 흐뭇하게 봐 주신다. "그놈의 콩깍지는 언제 벗겨질라나?"

 

결혼 7년 차 부부. 우린 하루에 뽀뽀 열 번은 기본이다. 신혼 때보다 지금이 더 잦다. 뽀뽀가 다정한 부부 관계의 상징이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횟수를 늘린 건 아니다. 갈수록 예쁜 구석이 발견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잦아졌다. 횟수가 잦아지면서 뽀뽀와 키스가 엄연히 다른 감정에서 유발된다는 걸 알았다. 뽀뽀가 사랑스러운 상대에게 하는 거라면, 키스는 사랑하는 사람끼리 하는 행위다. '사랑스럽다''사랑하다'의 차이가 뽀뽀와 키스의 차이이자, 내가 뽀뽀를 더 고차원으로 보는 이유다. 사전적인 의미를 보면 '사랑스럽다' '생김새나 행동이 사랑을 느낄 만큼 귀여운 데가 있다', '사랑하다''상대에게 성적으로 끌려 열렬히 좋아하다'라는 뜻이다. 성적으로 끌리는 것보다 상대를 사랑스럽게 느끼는 감정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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