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생각 - 모야모야

 

시한부 인생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감동적인 이야기로 그려진다. 사람들은 막연하게나마 생각해 본다. '나에게 시한부 선고가 내려진다면?'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이지만, 지금까지의 삶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인생을 계획하는 데 일종의 지표가 되기도 한다.

 

1997년에 만들어져 지금까지 훌륭한 감동작으로 꼽히는 <노킹 온 헤븐스 도어>. 암 진단을 받은 두 주인공이 돌발 행동을 벌이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를 담은 영화다. 범죄, 코미디, 드라마라는 세 가지 장르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작품이다. 세 장르의 조화는 시한부 설정에서 비롯된다. 시한부 판정으로 슬픈 드라마, 과감한 범죄, 엉뚱한 코미디를 동시에 녹여 낼 수 있었다. 치밀하고 지능적인 범죄가 아닌, 소박하고 어수룩한 범죄. 평범한 사람이 얼마 못 가 죽는다는 얘기를 듣고 엉겁결에, 충동적으로 저지르는 돌발 행동. 짠하면서도 코믹한 장면의 연속이다.

 

병에는 두 가지가 있다. 완치가 가능한 병과 불가능한 병. 불치는 다시 두 가지로 나뉜다. 생명에 지장이 없는 병과 생명을 위협하는 병. 후자는 또 두 가지로 나뉜다. 남은 시간을 예상할 수 있는 병과 예측불허인 병. 대부분의 시한부 스토리는 남은 시간이 최소 얼마, 최대 얼마라고 주어지는 환자의 얘기다. <노킹 온 헤븐스 도어>의 두 주인공 역시 실제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 과감하고 엉뚱한 생각을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시한부 선고가 내려짐과 동시에 그들의 삶에는 많은 변화가 생긴다. 일상도 달라지고 생각도 바뀐다. 완치가 가능하거나 생명에 지장이 없는 병의 경우에는 일상에 상당한 변화가 생기지만 생각의 전환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남은 한 경우, 생명을 위협하는 불치병 중에 남은 시간을 예측할 수 없는 경우는?

 

나는 여기에 속한다. 병명 치고는 영어도, 한자어도 아닌 것이 참 머쓱하게도 생긴 모야모야. 처음 발견된 곳이 일본. 그네들이 붙인 이름이라 이 모양이다. 영어로도 'moyamoya'. 원인은 불명. 쉽게 말해 이런 병이다. 뇌의 정상 혈관이 막혀서 갈 곳 없는 피가 계속해서 임의적으로 비정상적인 혈관을 만들어 내는 병. 그렇게 만들어진 비정상 혈관이나 막힌 정상 혈관이나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 길이 없으니 피는 종종 우왕좌왕한다. 이로 인해 하루 한 번, 혹은 1년에 한 번 마비 증세가 나타난다. 가장 위협적인 사안은 뇌출혈의 가능성이 높다는 것. 언제 반신불수가 될지, 언제 즉사할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일부 의사들은 이 병을 가리켜 '폭탄'이라 부른다고 한다. 평소에는? 매우 멀쩡하다.

 

마비 증세를 유발하는 몇 가지만 주의하면 너무도 멀쩡하기에,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직장을 때려치우거나 있는 돈을 죄 써 버릴 수는 없다. 잡을 테면 잡아 봐라, 사고를 치거나 범죄를 저지를 수도 없다. 감옥에서 백 세 생일을 맞을지도 모른다. 과감한 결단, 상식 밖의 행각은 어찌 보면 시한부만의 특권이다. 남은 시간이 하루가 될 수도, 100년이 될 수도 있는 불치병. 이를 안고 산다는 건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문득문득 다른 생각을 하며 살아 가는 일이다. 일상의 변화보다 생각의 변화가 크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렇다. 나의 모야모야는 내 본래 모습, 본래 가치관을 깨우쳐 준 기특한 녀석이다.

 

 

미지 처 [Enfermedad de Moya Moya] Link

이버 보 [병] Link

 

 

Posted by 몽자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