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콤비 - 두 개의 구슬 - 칭찬

 

몇 년 전 한 오락 프로그램에서 키 작은 남자를 '루저(loser)'로 표현해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언제부턴가 작은 키는 열등한 것이 돼 버렸다. 키 크는 약이며 주사, 시술까지 유행할 정도로 애 어른 할 것 없이 큰 키에 목을 맨다. 키가 작은 사람은,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이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남자의 경우엔 더욱 심하다. 170센티에 못 미치는 남자 키는 공공연한 약점으로 통한다.

 

남편의 키는 앞서 공개한 것처럼 167. 중력 때문에 아침과 밤에 재는 키가 달라진다는 재미난 얘기를 듣고 며칠간 둘이서 아침저녁으로 키를 재 본 적이 있다. 당시 최고치가 167이었다. 최저치는 165. 대외적으로 그의 키는 당연히 최고치인 167센티다. 늘 또래보다 컸던 나는 한때 작은 키, 왜소한 몸집을 막연히 부러워했다. 한 번도 작아 본 적이 없어서다. 가 보지 않은 길에 대해서는 누구나 궁금하기 마련이다. 그는 중학교 때까지 큰 편이었다가 이후 작은 축에 속한 경우. 키에 대한 콤플렉스가 그리 심하진 않았지만, 전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중요한 건 지금. 그는 본인의 키에 만족하고 있다. 내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작아서 좋다'고 말해 온 덕분이다. 솔직한 심정이다. 같은 조건이면 키 큰 남자가 낫지 않겠냐고 물으면, 난 무조건 ''. 남자든 여자든 나보다 월등히 큰 사람은 왠지 적응이 안 된다. 우리나라 평균 키는 남자 174, 여자 160. 나와 엇비슷하거나 나보다 작은 사람이 익숙한 건 당연한 일이다. 키 큰 남자를 선호하는 여자들에게 묻고 싶다. 남자 키가 커서 좋은 점이 대체 뭔지. 본인의 작은 키에 대한 대리만족 등 분명한 이유가 있다면 큰 키는 분명 필수 조건이다. 내가 평균 키 이상의 남자를 꺼리는 이유는 하나다. 상대의 큰 키가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등한 관계에 적잖이 방해가 된다는 얘기다.

 

그의 키가 167이어서 좋은 점은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 우리 관계를 보다 평등하게 한다. 상하, 고저, 보호자와 피보호자가 아닌 '너와 나'로 대할 수 있다. 둘째, 손 잡고 어깨동무하고 뽀뽀하고 볼 꼬집기가 편하다. 한마디로 스킨십이 편하다. 셋째, 옷을 같이 입을 수 있다. 키는 발 크기와 비례한다. 우린 신발도 같이 신는다. 넷째, 내 키에 맞춰서 집안을 꾸미면 그의 키에도 딱 들어맞는다. 거울만 해도 둘 다 편한 높이에 고정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귀여운 실루엣을 완성한다! 그의 키가 지금보다 더 컸다면, 사람들이 이상적이라고 말하는 182쯤 됐다면, 아마 지금 같은 행복은 못 누렸을 것이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나는 솔직하게 그에 대한 생각, 작아서 좋은 이유를 말했을 뿐인데 운 좋게도 한 가지를 덤으로 얻었다. 그가 키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것. 처음엔 나만 167이라 좋아했지만, 긍정적인 기운이 그에게까지 번져서 그 역시 본인의 키가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그의 작은 키는 그야말로 안성맞춤이다. 그의 강점인 친화력에 상당히 도움이 된다. 큰 키는 멋스럽고 위엄 있어 보일 순 있지만, 서로 간에 경계를 허물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에는 작은 키가 오히려 더 유리하다.

 

칭찬도 강점과 연결 지을 때 효과가 배가 된다고 했다. 그의 친화력을 높이 사는 나는 그에게 종종 이렇게 말한다. "만약 키가 182쯤 됐다면 지금처럼 사람들한테 사랑 받진 못했을걸!" 그는 이제 어디를 가도 자신감이 넘친다. 작은 키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다행이지 싶다. 나이에 맞지 않는 장난을 쳐도 주책맞아 보이지 않고, 믿음직스럽고 듬직한 자리가 주는 부담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어서다. 자유롭고 유쾌하게 살려고 일부러 안 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는 너무도 적절한 키를 타고났다.

 

 

 

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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