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콤비 - 대리만족

 

나는 냄새에 민감하고 그래서 자주, 꼭 비누로 손을 씻는다. 하루는 자다 깬 그의 손을 만지작거리다가 우연히 손에서 정체 모를 냄새가 난다는 걸 알았다. 그 뒤로 그의 손에서 풍기는 냄새는 우리 부부의 또다른 재밋거리가 됐다. 하루종일 음식을 다루기 때문인지, 제대로 안 씻어서인지는 알 수 없다. 이유를 몰라도 상관없다. 인간적으로 구수한 체취를 풍기는 그가, 아니 그런 체취를 풍기기 때문에 그가 더 좋다는 게 중요하다. 비웃거나 빈정대는 거라면 눈치 빠른 그가 모를 리 없다. 귀여운 꼬맹이를 보면 괜히 장난치고 싶은 것처럼 예뻐서 놀리고 싶어 한다는 걸 그도 잘 알고 있다. 상황은 그의 재치 덕분에 더 유쾌해진다. 무슨 이런 냄새가 다 있냐는 듯, 정말 고약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린다. 곧장 손을 씻지도 않는다. 코에서 멀찌감치, 이불 속에 숨겨 넣으면 그만이다. 또 한 번 웃지 않을 수 없다.

 

한결같이 이상형으로 꼽았던 흰 얼굴과 손발. 어쩌면 그의 곱디고운 손에서 나는 야릇한 냄새가 웃음을 유발하는 건 보기와 다른 반전의 효과인지도 모르겠다. 발도 마찬가지다. 사이즈가 나보다 10미리는 작은 놈의 발. 일명 칼발이다. 볼도 좁고 하얗기만 하다. 발에도 반전이 숨어 있다. 무좀이다. 그의 발에 무좀이 있는 건 당연한 결과다. 발가락이 다닥다닥 붙어 매끈한 발 모양을 하고 있으니, 게다가 건조하지 않은 촉촉한 피부를 가졌으니 당연한 것 아니겠나? 다행이기도 하다. 손발이 나보다 예쁜 그가 깨끗하기까지 하면 난 그야말로 손발에 있어서는 그에게 열등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내가 이상형의 조건으로 손발 예쁜 남자를 꼽았던 건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상대에게 바라기 때문이었다. 무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를 포함한 식구들 중 누구도 무좀이 없다. TV에서 웃음거리로 들먹일 때 들어 본 게 전부다. 무좀 하나 없이 깨끗하기만 한 내 발보다 아기자기하기 때문에 무좀 좀 있는 그의 발이 훨씬 예뻐 보인다. 무좀 때문에 그는 좀 고생스러울지 몰라도, 난 딱 지금의 그 발이 좋다.

 

냄새에 민감하면서도 그의 손, 발 냄새를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는 데에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냄새의 원인이 다름 아닌 나에게 부족한 것이기 때문이다. 건성 중에서도 심각한 수준인 나는 항상 땀보다 각질이 걱정거리였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통 건조해서 탈이었다. 발 냄새를 모르고 살았던 것도 땀이 없어서였다. 겨울이면 웬만한 핸드크림도 소용이 없다. 주먹 만한 용량에 3만 원은 투자해야 정상적인 손이 된다. 그런데 유명 해외 브랜드 못지 않게 내 손을 정상적으로 만들어 주는 게 있다. 한겨울에도 촉촉한 그의 손이다. 놈의 손과 나의 애물단지 손이 만나면 비로소 둘 다 평범한 손이 된다. 땀이 적절히 나뉘는 것이다. 적당한 피지는 피부를 촉촉하게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비싼 바디샴푸, 바디로션을 들이부어야 하는 내 피부에 비하면, 그는 돈 안 드는 좋은 피부를 타고난 셈이다. 그가 자고 일어나 풍기는 구수한 냄새는 고운 머릿결, 예쁘장한 손발에 대한 값 지불인 것이다. 기꺼이 값을 지불하고 누리는 나는 덕분에 가진 걸 떳떳하게 만끽할 수 있다.

 

잘하면 윤기가 되고 잘못하면 기름기가 되는 피지. 머리를 감은 지 3일이 지나도 기름기라곤 없는 나는 늘 푸석푸석한 머릿결이 불만이었다. 긴 생머리라고는 해 본 역사가 없다. 숱도 많아서 머리에 뭘 이고 다니는 꼴이 돼 버린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은 쉽게 가시지 않는 법이다. 어차피 매일 감는 머리, 기름기가 될 정도로 넘치더라도 건조한 것보다는 낫겠다 싶었다. 아무리 다르게 생각해 보려 해도 푸석한 머리카락은 어떤 면에서도 좋을 게 없었다. 없는 줄 알았다. 상황은 결혼 이후 역전됐다. 가늘고 차분한 머릿결을 가진 그가 부시시한 내 머리를 탐내는 것이다. 똑같은 헤어스타일을 해도 느낌은 항상 다르다. 가지런한 그와 들쭉날쭉한 나. 감은 지 하루만 지나도 시각적으로나 후각적으로나 티가 나는 그의 머리칼은 나를 만족시키고, 좀처럼 말을 듣지 않는 삐죽삐죽한 내 번개 머리는 그를 만족시킨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 주는 흐뭇한 비주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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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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