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큐>(2002)

 

사회적 정의와 가족적 정의의 실현

 

자본주의의 폐단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동시에, 이에 처절하게 맞서는 부모의 모습을 담은 영화 중 으뜸은 단연 <존 큐>. 영화 <존 큐> <나는 아빠다>처럼 심장 이식을 받아야 하는 위기에 놓인 자녀를 둔 부모 이야기다. 자본주의의 사각지대로, 보험 및 의료서비스를 집중 조명하고 있다. 돈이 없다는 이유로 조용히 침대에 누워 죽음이나 맞으라는 병원측, 회사의 부담을 덜기 위해 병원 로비 작업에만 열을 올리는 보험 업체. 영화는 가정의 평화를 지키는 데 앞장서야 할 사회가 '' 앞에 얼마나 큰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 지적한다. 아울러 내 자식만 우선시하는 '이기적인 가장'이 아닌, '인간의 존엄성을 부르짖는 성숙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 준다.

 

줄거리

 

아들과 아내, 존 큐, 세 식구는 가족 간의 사랑과 긍정적인 마인드로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다. 유난히도 씩씩한 아들 마이크. 야구 경기 도중 갑자기 쓰러진 마이크는 병원으로 옮겨져 심장을 이식 받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는다. 비정규직으로 번듯한 직업 하나 없는 존. 생활고 와중에도 보험료만큼은 꾸준히 납입했지만, 업체측은 해당 사항이 없다며 외면한다. 사방팔방으로 알아봐도 보험 혜택과 병원 수술은 먼 나라 얘기다.

 

존은 응급실을 봉쇄하고, 환자 및 보호자, 담당의사를 인질로 가둔다. 심장을 구할 수 없다면, 자신의 심장이라도 아들에게 이식하라며 의사를 협박한다. 아들에게 심장 기증을 결심한 존이 수술을 받기 위해 자리에 눕는 순간, 조직이 일치하는 심장이 도착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인질은 모두 무사하다. 존은 인질극 혐의로 재판을 받지만, 아들 마이크를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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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을 위협하는 사회

 

필살기, 사랑

 

아내와의 맞벌이로 근근이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존. 아내는 슈퍼마켓에서 일한다. 존은 하루 종일 일하지만, 비정규직 신세다. 대출금을 상환하기 버거워 부업도 알아보고 있다. 현실은 만만치 않다. 돌연 아내의 차를 끌고간 은행. 아들 마이크는 '차를 끌고 가다니 너무하다, 어른이 되면 악당들의 엉덩짝을 패 주겠다' '은행' '악당'에 비유한다. 아내를 볼 면목이 없는 존. 안타까운 이 시대 가장의 모습이다.

 

성실하게 일해 왔지만, 본디부터 가진 것이 없는 자에게 가난은 좀처럼 벗어나기 힘든 굴레다. 잘못한 것도 없이 죄인으로 전락시키는 사회. 아내는 암담한 현실을 비관하지만, 이내 마음을 풀고 웃으며 묻는다. '나 회사까지 태워다 줄 거지?' 세 가족은 나란히 존의 차에 올라, 주거니 받거니 노래를 흥얼댄다. 학교 앞에 다다르자 마이크가 말한다. "내 통장에 있는 46달러, 아빠 써도 돼요. 가족은 어려울 때 서로 돕는 거니까." 찡하다. 여전히 씩씩한 마이크. 아빠는 아들을 보며 힘을 얻는다.

 

한 집안의 경제력에 대한 책임은 가장에게 쏠려 있다. 존의 아내는 퇴원 처분을 듣고, 무슨 짓이든 해 보라며 존을 다그친다. 맞벌이가 대세지만, 여전히 책임자 1순위는 남편, 아빠다. 응급실에 갇힌 인질들 중 만삭인 부부가 있다. 예정 일자는 바로 오늘. 이 부부도 아내의 원망은 남편을 향한다. 산모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남편을 책망한다. 힘을 모아 난관을 헤쳐나가기보다는 한 사람의 책임으로 돌리려는 태도. 영화 <존 큐>는 가정을 존속시키는 데 사랑과 돈, 그리고 '합심'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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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

 

가족의 수단은 사랑, 목적은 행복이다. 목적은 행복 그 자체로 충분하지만, 수단은 때때로 사랑 이외의 것을 동시에 요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무엇보다도 돈이다. 아들의 심장에 이상이 생겼다는 의사의 진단. 이식 외에는 살릴 방법이 없다는 설명. 부모에게 자식의 건강보다 위협적인 재앙은 없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보호자로서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부모. 존은 냉정을 되찾고 수술을 요구하지만, 경제적 여건은 그에게서 선택권을 빼앗았다. 아들의 병이 하늘의 뜻이라면 받아들이겠다. 하지만 병원과 보험사의 이해 관계 때문에 아들이 목숨을 잃게 된다면, 부모로서 납득할 수 없다. 사회에 반기를 드는 수밖에.

 

존도 극단적인 결정을 내리기 전,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본다. 가구와 전자제품을 내다 팔고, 몇 달러에 얹어 주는 이웃 주민들의 마음도 감사히 받는다. 절차에 따라 의료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 그러나 보험사와 병원의 문턱은 너무 높다. 이식 대기자 명단에조차 올려 주지 않는다. 머니(money)만 반복하는 망할 놈의 원무과 직원. 급기야 밀린 병원비를 이유로 퇴원 조치를 취하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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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와 환자, 그리고 병원

 

환자 이꼬르 돈

 

보험 혜택, 회사 복지기금, 아동 의료지원 정책 등 어느 곳에도 길이 보이지 않자 응급실에 인질과 의사를 가둔 존. 응급실에는 피를 흘리는 환자와 임산부, 아기가 있다. 존은 인질들에게 말한다. "이제부터 이 병원은 내가 관리한다! 지금부터 모든 치료는 무료다!" 의사에게 '보험증 운운하지 말고 치료부터 하라'고 지시한다. 인질극 중 구급차에 실려 도착한 총상 환자. 존은 환자를 안으로 들인다. 마이크 담당의사인 터너에게 수술을 명령한다. 자기 분야가 아니라 수술할 수 없다는 터너에게 존은 이렇게 말한다. "돈 받았다고 생각하고 수술해!" 환자는 목숨을 건진다.

 

인질극이 한창이던 때, 병원 밖에서는 경찰과 원무과 직원 레베카가 언성을 높이고 있다. '마이크의 수술을 허하라'는 경찰에게 레베카는 담배를 꼬나물고는 '병 걸리고 죽고, 그런 게 인생'이라며 '팔자소관'이라는 듯 지껄인다. 철저한 자본주의의 표상이다. 물론 존이 옳다고 볼 순 없다. 아들을 살리기 위해 인질극을 벌이는 건 분명 범죄다. 하지만 그의 총은 비었다. 총알도 안 든 총을 들고 아들을 살려 달라 울부짖고 있다. 이런 존을 두고 안타까운 기색은 커녕 '보란 듯이 요구를 거절해야 한다'는 병원측의 태도는 환자의 가족을 두 번 죽이는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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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와 의료진의 짜고치는 고스톱

 

<존 큐> 2002년 영화다. 의료 서비스 및 보험 관련 문제는 진작부터 미국 서민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었다. 세계금융위기가 닥친 이후, 우리나라 의료 민영화와 함께 더 많이 알려졌을 뿐이다. 존이 원하는 건 단 하나. 아픈 사람은 치료 받아야 한다는 것. 가진 돈에 상관없이. 그뿐이다.

 

존이 봉쇄한 응급실 안. 보험사와 병원의 비리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레 흘러나온다. 존은 정기검진을 꾸준히 받았는데도 병이 조기에 발견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하다. 터너는 제대로 된 검사가 아니었을 거라고 말한다. 초짜 의사에 의해 밝혀진 진실은, 보험사가 의사에게 뇌물을 건네 초기 발견을 막는다는 것. 의사는 병원의 요구에 따라 진단하고 시술할 뿐이라고 변명하지만, 사람들의 눈총을 피할 순 없다. 모두가 알고 있다. 돈 없는 환자는 병원에서 내쫓기는 신세라는 걸.

 

존은 심장 이식 대기자 명단에 마이크를 올렸다는 경찰의 말을 믿었다. 하지만 이는 꼼수였다. 존을 안심시키고 그 틈을 타 사살할 계획이었던 것. 계획을 눈치 챈 존은 마지막 결정을 내린다. 자신의 심장을 아들에게 주기로 한다. 아들만 들여보내면 상황을 종료시키겠다는 존의 요구에 따라, 경찰은 마이크를 응급실로 옮긴다. 수술대에 오른 존은 극적으로 도착한 기증 소식에 아들과 자신의 목숨을 구한다. 아버지는 용감했고, 희생적이었으며, 하늘은 그런 아버지를 도왔다.

 

의사의 권리와 의무

 

부모라 해도, 부모의 심장을 자식에게 주고 싶어도, 수술은 의사 몫이다. 살아 있는 사람의 심장을 꺼내는 건 불법이다. 존은 비어 있던 총에 준비한 총알 하나를 끼워 넣는다. 자기가 총으로 자살하면, 자기 심장을 아들에게 이식하라는 거다. 의사에게 과실을 떠넘기지 않겠다는 의지다. 함께 있던 인질들은 지금까지 빈 총으로 협박한 존이 어이없으면서도, 처음부터 해칠 의도가 없었다는 게 뭉클하다.

 

의사는 내내 수술하지 않겠다고 맞선다. 자살은 해결책이 아니라고, 도리와 윤리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말한다. 도리와 윤리를 먼저 어긴 건 병원과 보험사다. 그의 본심이 과연 인간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도리를 지키고자 하는 걸까? 자본·민주주의 사회의 법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이기심 아닐까?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라는 충고는 존에게 먹힐 리 없다. 그럴 바엔 아들에게 심장을 기증하기 위한 아버지의 자살을 받아들이라고, 역으로 충고한다. 

 

마이크의 담당의사 터너는 존의 눈에서 간절함을 읽는다. 수술을 진행하기로 마음 먹는다. 의사직을 박탈 당하게 될 거라는 여의사의 만류에 터너는 이렇게 대꾸한다. "자격 박탈? 무슨 자격? 골프 클럽 회원 자격? 여긴 병원이야. 이식할 심장이 있으면, 난 의사로서 당연히 수술하는 게 맞아." 같은 아버지로서 자식을 살리고자 하는 '부모의 마음'을 절감한 것이다. 그렇게 존과 마이크의 수술은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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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 맞서 자식을 지키는 부모의 결정판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하늘. 하늘은 존에게 기적을 선물한다. 존이 자신의 머리에 총을 겨눈 찰나, 이식 가능한 심장이 나타났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이식에 적합한 환자는 마이크뿐. 말 그대로 기적이다. 영화는 허구지만 SF, 판타지도 아니다. 드라마다. 우리 생활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어찌 보면 현실보다 더 개연성 있게 짜여진 드라마.

 

존의 대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이 있다. 사회와 맞서면서도 타인의 인권 역시 소중히 생각하는 진정한 부모의 모습을 담은 대사다. "이 총에 죽을 사람은 나 하나였다." 자기 자식을 살리기 위한 희생은 자기 외에 그 누구에게도 강요할 수 없다. 남을 해치고 구하는 자식의 목숨은 의롭지 못하다. 영화가 시사하는 바를 기억하자. 오직 마이크에게만 맞는 심장, 어느 누구도 다치지 않은 인질, 단 하나의 탄피. '자본보다 인권'이라는 간단한 진리를 가리킨다.

 

인질 중 유일하게 피를 본 인간이 있다. 임산부와 갓난아기를 인질에서 풀어주려는 존에게, 자기 먼저 나가겠다고 설쳐 댄 놈이다. 그는 여자친구와 함께다. 교통사고로 팔을 다쳤다는 여자친구. 존을 공격하려다 오히려 궁지에 몰리자 놈의 여자친구는 존이 아닌 놈을 구타한다. 교통사고는 없었다. 놈의 폭력이 그녀의 팔을 부러뜨렸다. 모든 인질이 무사해도, 그런 놈은 몇 대 맞고 나가는 게 하늘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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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큐 (2002)

John Q 
8.9
감독
닉 카사베츠
출연
덴젤 워싱턴, 제임스 우즈, 앤 헤치, 로버트 듀발, 대린 브라운
정보
범죄, 스릴러, 드라마 | 미국 | 100 분 | 2002-03-15
글쓴이 평점  

 

시나리오 메시지 MONZAQ

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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