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CBS 특집 토론 「한국 기독교, 세상과 어떻게 대화할 것인가」 中

아프가니스탄 선교단 피랍, 구출 후

진중권 曰 

 

한기총이라는 데서, 이라크 전쟁을 찬성할 땐 언제고 이젠 이라크 주민들에게 보낼 생필품을 모으고 있다. 4만 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죽었다. 이에 대한 책임, 분명 교회에도 있다. 물건 몇 개 보내는 걸로 될 일이 아니다.

 

인질들이 막 풀려났을 때, 한 기독교인이 그 사람들이 믿음이 좋아서 풀려났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인질들을 구하기 위해 우리 사회가, 외무부가 온갖 노력을 다했는데, 정작 풀려나고 나니 믿음이 좋아서 풀려났다는 거다. '풀려날 기회가 있었는데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한 한 인질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냐', '하나님이 풀어줄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양보했던 거다'라는 발언은 기독교인들이 구사하는 언어가 얼마나 사회적 상식과 동떨어져 있는지를 확인시켜 준다. 교회 내에서는 통할지 몰라도 밖에서 볼 때는 굉장히 황당하다.

 

한국 교회는 그동안 소통을 거부해 왔다.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게 교회 문제다. 방송에서 한 번 비난조로 얘기했다가 온 신도들 다 몰려와서 포위하고, 전화해 대고, 난리도 아니었다. 자기들 뒤에는 신이 있다는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지, 인간의 상식을 넘어서는 행동까지 벌인다. 그렇게 시달릴 걸 아니까, 귀찮으니까, 피곤해지니까, 더 이상 교회 얘길 안 하는 거다. 결국 건강한 비판을 받아야 교회도 건강해지는데, 교회가 소통하지 않고 교회 안에 스스로를 가두면서 기독교 언어가 일종의 사회 방언이 돼 버렸다. 고립돼 있다 보니 이해 받지 못하고, 그래서 최근 '기독교가 아니라 개독교다'라는 표현까지 나오게 됐다고 본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해외 봉사 활동의 경우, 자원봉사라고 하지만 이건 봉사가 아니다. 봉사는 일종의 수단일 뿐 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건 '복음 전파'기 때문이다. '선교 지도'라는 걸 만들어 기독교와 비기독교 지역을 구분해 표시하고, 퍼센테이지까지 다 계산해 들고 가는데 이게 어떻게 봉사인가. 잘 살고 있는 현지인들에게 전쟁 일으키고 한국군 들어오고, 그 틈을 타서 시장이 열렸다며 기독교인들이 몰려올 때, 우리도 봉사를 가장한 선교로밖에 보지 않는데 무슬림 입장에서는 당연히 납득하기 어렵지 않겠나. 이런 선교 방식을 '스트레스 선교'라고 하는데, 미국의 선교 단체에서는 '처음에는 절대 기독교인인 척 하지 말라'부터 시작해 언제 교리를 전해야 하는지까지, 스트레스 선교의 방법론을 실제로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도 순수하게 봉사로만 봐 달라는 건 기독교의 허무맹랑한 바램일 뿐이다.

 

네티즌이 분노하는 이유는 '아프간은 위험 지역이니까 여행을 삼가라', '전쟁하는 곳이니 가지 마라' 했는데 굳이 가서는 결국 그런 불미스런 일을 당했다는 거다. 정부에서도 말린 일이다. '봉사는 다른 데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꼭 무리하게 사람들을 그쪽에 보내야 했나', '이것이 과연 올바르고 상식적인 결정이었나' 생각해 봐야 한다. 다른 지역에서 선교하다가 우연히 납치된 것도 아니고, 애초에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정부의 제지마저 뿌리치고 본인들이 자진해 들어간 경우다. 그런데 그런 일이 생기니까 살려 달라고 한단 말이다. 그 점이 사람들의 비난을 산 거다.

 

교회는 당연히 교인들의 생명을 보호하고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걸 생각해 더 신중했어야 했다. 아프간에 간 사람들이 약품 몇 개 전해주기 위해 목숨을 걸고 비장한 각오로 갔다고 보여지지는 않는다. 위험을 막연하게만 여겼던 것 같다.

 

개신교가 최악이라고 말들을 하는데, 개독교 역시 가톨릭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적어도 가톨릭의 경우 조직이 자본주의적이지는 않다. 아무리 작은 성당을 담당하는 신부라 하더라도 생계 유지는 가능하다. 그러나 개신교는 철저히 자본주의적 방식을 취하고 있다. 오지 교회에서는 목사가 생활비도 못 벌어 힘들어 하지만, 대형교회에서는 신도들로부터 엄청난 지지를 받으면서 하나님과 같은 권위를 누린다.

 

한국 '교회'의 성장 과정을 들여다보면, 한국 '경제'의 성장 과정과 너무도 닮아 있다. 그 천박성까지. 가난한 사람들이 쫓겨날 때는 아무 소리 않고 있다가 비리 재단을 옹호하면서 별 것도 아닌 개방형 이사건으로 목사들이 삭발 시위를 벌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행각이다. 아예 불가로 출가를 하지 그러나. 또 사학법 개정안에 대해서 십자가를 들고 고난의 행군을 하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이 정말 그 사학 재단에 개방형 이사 하나 들어가는 정도였는지 묻고 싶다. 십자가를 무슨 신용 소품쯤으로 여기나 보다.

 

막장 인생들이나 할 법한 저질 발언들을 대형 교회 목사들이 강단에서 대놓고 퍼붓고 있다. '하나님의 명령으로 이라크를 친다!' 이러면서 부시 대통령의 전쟁 선포에 찬성하고, 쓰나미를 가리켜 '이교도에 내리는 하나님의 심판'이라 말하고, 여자가 성직자 된다니까 '기저귀 차고 설교할 거냐'고 비아냥거린다. 실제 목사들의 설교 중 나온 얘기다. 작은 교회에서 애쓰는 가난한 목사들이 저지하고 나서도 권력에서 무시될 뿐 목소리를 내지도 못하는 데다가, 언론 등을 통해 보여지는 건 권력을 가진 목사들이기 때문에 이들이 전체 한국 교회의 표상이 되었다.

 

 

 "사소한 표현은 꽤 깊은 뿌리에 근거한다."

 

 

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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